조상인 고암경제교육연구소장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겨레의 자존심을 지켜낸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 정신

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본다.

나라를 잃었던 백 여 년 전, 의리를 택하여 순국한 인물의 죽음을 자정순국(自靖殉國)이라 부른다. 이는 나라를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는 말이다.

왜적의 백성이 되는 일은 결코 받아들일 수 없었다. “삶을 포기하는 한이 있어도 의리를 택하는 것이 성현의 가르침이니, 오호라 우리 동포여 힘써 나아갈 때가 지금이 아닌가?” 안동출신으로 의병 항쟁하다가 순국한 이중언이 남긴 말이다. 안동출신 이만도가 앞장서고, 이중언을 비롯한 안동지역 유림들이 그 뒤를 따랐다.

의병장 출신 이만도는 패망의 책임을 통렬히 느낀다면서 24일 동안의 단식 끝에 숨져갔다. 이 길을 택한 사람은 대게 양반유림이 많고, 주어진 직책과 위상에 따라 상당한 책임감을 느낀 지위 높은 관직자가 있지만, 오로지 남편의 순절에 따라 나선 부녀자도 있었다.

자정순국은 그저 살기 싫어 세상을 버린 것이 아니라 내려누른 집권세력의 부당함을 지적하고 이를 부정하는 저항행위다.

대한민국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상징하는 안동 임청각은 초대 국무령을 지낸 석주 이상룡 선생의 생가이며, 3대에 석주 선생을 비롯한 독립운동가 10명을 배출한 고성이씨 가문의 종택이다.

석주선생은 1911년 집안의 노비문서를 불태우고 너희들도 이제 독립군이다라며 노비들을 해방시키고 식솔들을 이끌고 임청각을 떠나 만주 망명길에 올라 독립운동에 여생을 바쳤다.

학식이 풍부하고 재산이 많은 석주 선생이었지만 국난극복의 선봉에 섰다,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전답은 물론이고 99칸짜리 임청각까지 처분해 독립운동 자금으로 썼다.

망명길에 올라 압록강을 건너기 전 내 아내와 자식들을 왜놈 종이 되게 할 수 없다는 시 한 절로 비분강개한 심중을 토로했다. “나라를 찾기 전에는 내 유골을 고국으로 가져가지 마라는 유언을 남긴 채 1932년 만주에서 생을 마쳤다. 아들인 이준형 마저 1942년 자결로 일제에 항거했다.

이 집안이 독립투쟁에 바친 세월을 보면 석주의 아들, 손자 3대에 걸쳐 무려 400여년이 된다.

일제는 독립운동 성지나 다름없는 임청각의 정기를 끊으려고 마당 한 가운데로 중앙선 철길을 내고 행랑채와 부속건물 등 50여 칸을 뜯어내 오늘의 어색한 모습을 갖게 됐다. 다행이 문화재청은 2025년 까지 일제강점기 이전 모습을 되찾아 지금은 사라진 가옥 3, 철로 개설로 망가진 주변 지형, 옛 나루터 등을 되살릴 예정이라고 한다.

석주 후손들은 해방 후에도 독립운동에 전 재산을 바치는 바람에 후손들은 가난한 탓에 학교에 다니기조차 어려운 형편이었다. 이병화와 허은 여사 사이에 태어난 아들 이항증과 여동생은 고아원에서 생활해야만 했다.

보훈처에 따르면 지금까지 서훈을 받은 독립유공자는 15,180명에 달한다. 단일 지역으로 따지면 전국에서도 경상북도, 그중에서도 안동출신 독립유공자가 제일 많은 941명이다.

의성김씨 집성촌 중에서도 내앞 마을이라 불리는 안동 임하면 천전리에서 난 독립유공자의 수는 33명 정도로 눈에 띌 정도로 많다.

지난 128일자 주간조선 기사보도에 따르면 내앞마을의 독립운동을 이끈 백하 김대락(金大洛, 건국훈장 애족장)이 일가 친척 150여명을 이끌고 만주로 독립운동 하러 떠났을 때 당시 안동에서 존경받는 인물이었던 김대락의 집은 삼 천석 집이라고 불리었다. 사람이 천석, 글이 천석, 땅이 천석 있다고 해서 붙은 별명이었다. 그만큼 안동 유림(儒林)의 존경을 받으며 경제적으로도 풍요로운 삶을 누렸던 인물이었다.

한편 1919년 안동 예안 3.1운동을 주도한 혐의와 창씨개명, 신사참배 거부로 목사직을 시무사면당하고 서대문형무소 등에서 4차례 구금당한 이원영 목사가 있다. 오는 4월 이원영 목사생가인 안동시 도산면 원천리에서 한국기독교사적 지정식이 있을 예정이다.

오늘날 한국사회의 많은 지도자, 법조인 그리고 신앙인들의 자세가 정도에서 벗어나 국민들의 탄식이 그치지 않는 천인단애와 같은 혼돈의 이 시대!

3.1운동 100주년에 조국의 독립운동을 위해 평생을 바친 독립운동가들의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정신을 되돌아본다.

                                                                                                                                                                    조상인 고암경제교육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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