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인 고암경제교육연구소장

세계적으로 열 명중 한 명은 장애인이고, 65세 이상 노인 2명중 1명이 장애인이다. 고령화와 빠른 산업발달로 사고, 재해로 인한 장애인구가 점점 늘어나는 추세이니 이제 더 이상 장애는 남의 일이 아니고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다.

우리나라의 장애인은 500만 명(미등록 장애인 240만 명 포함)이고 이들의 95%가량이 후천적 장애인이다. 장애가 없는 국민도 언제든지 장애인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장애인이 ' 보통국민'으로 살 수 없는 나라는 아무리 국민 소득이 높아도 선진국 자격이 없다.

내 눈에는 희망만 보였다-장애를 축복으로 만든 사람어둠속에서 하나님을 믿음의 눈으로 보았던 강영우 박사의 유고작

"장애는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꾼다. 장애는 나에게 축복이었다. 나는 장애를 통해서 세상을 변화 시킬 수 있었다. 눈에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의 아내를 만났고, 보이지 않는 눈으로 세상을 보는 법을 책으로 쓸 수 있었다. 장애에도 '불구하고'가 아니라 '장애를 통하여'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더불어 살아가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기 위하여 UN과 백악관을 무대로 종행무진 활동할 수 있었다."

중학교 시절 뜻하지 않은 사고로 실명한 후, 이어진 어머니와 누나를 잃은 맹인고아. 하지만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을 깨달아 대학졸업과 유학길에 올라 한국최초의 시각장애인 박사. 백악관 장애인 위원회 정책차관보, UN 장애위 부의장겸 루즈벨트재단 고문, 장애인인권과 복지를 위한 일생 삶의 여정.

"내일이면 귀가 안 들릴 사람처럼 새들의 지저귐을 들어보라. 내일이면 냄새를 맡을 수 없는 사람처럼 세상을 꽃향기를 맡아라. 내일이면 더 이상 볼 수 없는 사람처럼 세상을 보라"

"세상은 고난으로 가득하지만, 고난의 극복으로도 가득하다."

태어난 지 19개월 만에 성홍열병으로 인해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3중장애를 안고 살아야 했음에도 그 누구보다 세상을 가슴으로 느끼고 살았던 헬렌 켈러의 말.

세계적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박사는 21세에 중병에 걸려 길어야 2, 3이란 시한부 판정을 받지만 인생역전은 그때부터. “왜 내게 이런 일이라고 한탄하는 좌절의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때 이른 최후통첩에 남은 시간은 온전히 충실히 살겠다고 다짐한 것이다. 그로부터 그는 55년을 더 살면서 슈퍼스타급 인기를 누린다.

그가 요절 하기는 커녕 루게릭병 증세가 극도로 악화된 뒤에도 단순 연명이 아니라 위대한 물리학자로서 생애 막바지에 이르기까지 연구를 지속한 것은 기적에 가깝다. “내 최대 업적은 아직 살아있는 것이라는 그의 말에 감동이 온다.

김선태 실로암안과병원 원장 이야기.

어린 나이에 한국전쟁으로 시력, 친구, 친척, 건강, 희망, 재산, 그리고 부모 등 모든 것을 잃은 후 하늘을 구하는 자가 되어 인생과 신앙을 가지고 시각장애인이라는 고난을 뛰어넘어 믿음과 노력으로 실로암안과병원 원장에 도달하여 시각쟁애인 등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을 위해 헌신하기까지의 감동적인 여정을 살아온 분.

나는 남이 당할 수도, 느낄 수도 없는 고난과 고뇌와 아픔에 짓눌렸으나 그것이 지난 후에는 큰 물결 일어나 나 쉬지 못하나 이 풍랑 인연하여서 더 빨리 갑니다.”

천국도 열심히 믿음으로 공격하는 자가 들어가게 마련이다.

인생의 행복과 성공에 있어서도 열심히 땀과 눈물을 바쳐 기도하고 노력하면 사라진 희망도 다시 솟아오른다.

(김선태 목사. 실로암 안과병원장의 글 '땅을 잃고 하늘을 얻은 사람들'에서)

부디 세상의 모든 장애인들이 정상인과 더불어 일상생활을 할 수 있는 사회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나는 다섯 살 때 소아마비로 장애인이 되었지만 가족들과 주위 분들, 특히 친구들과 은사님들의 도움으로 불편과 차별을 받은 적이 별로 없었다. 오히려 과분한 혜택과 특혜를 받은 기억만 있다.

시골초등학교 신작로 10여리길 책가방을 친구들이 들어 주었고, 여름철엔 누님이 부채, 겨울철엔 모포로 등·하교 도와 주셨고, 눈비 올적엔 할머님이 우비가지고 먼 길 데리려 오셨다. 8남매 맏딸로 동생들 돌보느라 고생 많으셨던 누님도 요즘 병원진료 등으로 투병중이신데 쾌유를 바라는 마음이다.

지난해 봄 불의의 교통사고로 10년째 재활 치료중인 서울 동생을 문병하고 내려 왔다. 중고등 학창시절엔 3형제 자취하던 시절, 남동생은 식사당번 하느라 학교를 부업으로 다녔다.

지난날 진달래, 개나리 피는 봄날 집 앞 논에서 개구리 울음소리 듣길 좋아 하던 나를 위해 녹음해 주었던 동생을 코로나로 고향집 못 다녀간 이 봄에 재회를 기다린다.

해마다 장애인의 날에 기억했다가 잊히는 우리사회 장애를 생각한다.

                                                               조상인 고암경제교육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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