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안동의 가장 큰 자연마을, 마무골
마무골 토박이로 꾸려진 장남회
[안동시공동기획연재] 2018 안동·예천 근대기행(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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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은 사라진 관청이발관
 
어느 동네든 마찬가지다. 토박이들이 떠나고 터줏대감들이 서서히 자취를 감추는 시대다. 운안동 관청이발관과 빵 굽는 냄새 가득했던 풍년제과가 문을 닫았다. 부부자전거의 여사장님은 세상을 떠났다 하고 그나마 운안동 거리를 여전히 지키고 있는 소문난 만두는 여전히 문을 열어놓았다. 3대째 이어져오던 안동 유일한 대장간이었던 운안철공소도 문을 닫은 지 오래다. 운안목욕탕도 없어지고 그 자리에는 다른 업종이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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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안목욕탕 자리에 있었던 안동 유일의 대장간 운안철공소 ⓒ김종육
 
금곡동, 안기동, 평화동, 운안동이 맞닿는 운안교사거리 입구에 선다. 안기동과 운안동의 경계지점인 옛날 나이아가라식당이 있던 자리엔 장난감 매장인 토이랜드가 자리하고 있다. 그 옆 연탄구이 실내포장 ‘민이네’간판에는 그 시절의 정취를 간직한 듯 ‘나이아가라’라고 자그마하게 적혀있다. 이곳이 관거리, 관척골이라 불려진 데에는 마을에 감옥이 있어 관청 사람이 많이 왕래했다고 붙여진 명칭이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간판이 나무에 가려 글자가 하나도 보이지 않는 관청이발관의 명칭도 거기서 유래된 것이. 관청이발관 김덕진 사장은 몇 해 전 가게를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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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년 현재, 나이야가라식당이 있던 자리
 
운안동 도로에는 유난히 미용실과 이발관이 많다는 특색이 있다. 또 아파트와 주택이 많다. 상일대자연맨션부터 명성한마음타운, 교직원 아파트라 불리는 대성맨션, 대원한숲타운아파트, 청운연립, 동산주택, 대산빌라, 비교적 최근에 지어진 메트로빌리지까지 고즈넉한 동네는 1980~90년대 들어서 아파트와 빌라가 밀집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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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일대자연맨션과 명성한마음타운. 이 인근이 옛 안기역이 있었던 자리로 추정된다.
 
운안동 도로는 새주소 이름으로 ‘단원로’라 불린다. 조선후기 화가 단원 김홍도가 안동에 근무한 인연 때문이다. 서울대학교 도서관에 소장된 《안기역지(安奇驛誌)》의 <선생안(先生安)>에 기록된 바에 의하면 단원 김홍도가 40세 되던 해인 갑진년(1784) 정월에 안기의 찰방(察訪, 조선시대 각 도의 도로행정인 역참(驛站) 일을 맡아보던 종육품 외직 문관벼슬)으로 부임하여 병오년(1786) 5월에 임기를 마치고 떠났다고 적혀있다. 지금의 상일대자연맨션과 명성한마음타운 부근이 옛 안기역 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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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무골 입구
 
안기역사 주변 새골길로 접어드는 동산주택의 길가 벼랑에는 지금도 안기동천<雲安洞天>이라는 암각 글씨가 남아 있어 옛 자취를 조금은 엿볼 수 있다. 암각은 오랜 세월 무심히 그 자리에 있어 그 주위를 지나는 사람도 눈여겨 보지 않으면 찾지 못할 정도다. 동천(洞天)이란 하늘 밑 첫 동네, 즉 신선이 살 정도로 경치 좋은 곳을 일컫는 말이니 어떤 곳이었는지 짐작이 가능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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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무골에 선녀가 내려왔다는 것을 알려주는 마고동천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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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태호 씨의 마무골 집 마당
 
새골은 관거리 서쪽 골짜기에 있는 마을로 예부터 경치가 아름답고 새가 많은 곳으로 이름이 나서 붙여진 명칭이다. 이곳에 찰방(察訪)의 관사가 있었다고 한다. 또한 빗집골은 분지골 짓골로도 부르는데 새골 가까이 있는 마을 골짜기 입구에 효자각을 비집으로 부른데서 유래한다고 전해진다. 스피절은 빗집골 서쪽에 있는 마을이다. 신피사라는 절에서 유래한 이름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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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무골의 300년 된 한옥집
 
운안동에서 제일 큰 자연마을 마무골로 접어든다. 마고동천비가 있는 마무골에는 몇 년 전 벽화를 그려넣어 입구부터 벽화 일색이다. 비석 옆으로는 마고정이라는 육각정자가 세워져 있다. 마을에 전해져오는 마고선녀를 모티브로 한 그림이 마무골 벽으로 죽 이어 그려져 있다. 옛날 마고선녀가 내려와 목욕을 했다는 전설에 유래한 이름인 마무골에는 도랑이 흐르고 있었는데 마무골경로당 앞 컨테이너박스 자리가 개울이 흐르던 자리라고 한다. 족히 1m는 넘는 개울이었다. 이곳에서 멱도 감고 빨래도 하고 겨울이면 스케이트도 지치곤 했다. 또 마무골 입구에는 몇 백 년 묵은 커다란 회화나무가 있었다고 전해진다. 단오면 그네를 걸어 뛰곤 했다. 나무는 70년대에 없어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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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0년 안동법원 서기관 시절의 조주현 할아버지
 
마무골 중턱에는 300년 된 한옥집이 있다. 들창에는 비닐을 꽁꽁 덮어 제대로 월동준비를 끝냈고 처마 끝에는 곶감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넓은 마당에 우물이 있는 고즈넉한 한옥집에는 조주현 할아버지와 강금주 할머니가 사신다. 부부는 스물하나 스물에 결혼해 77년째 해로하고 있다. 조주현 할아버지는 1970년에 안동법원 서기관으로 근무했다. 아흔이 훌쩍 넘은 장수 부부의 기와집 풍경이 마무골의 품격을 더했다.

조주현 할아버지는 1922년 1월 1일생으로 이 한옥 집에서 태어났다. 올해 97세, 할머니는 노하동이 친정이다. 할아버지는 고조부 때부터 마무골 한옥집에서 지냈다. 중앙국민학교(안동초등학교) 26회 졸업생으로 일본으로 가서 중고등학교를 마쳤다. 아버지가 일본의 학교 교장과 친구사이라서 히로시마까지 가서 공부를 하고 온 유학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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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7년재 해로 중인 조주현 할아버지와 강금주 할머니
 
마무골은 함안조씨 집성촌으로 예전엔 대부분 조씨, 그리고 나머지 타성인 임씨와 강씨들이 살았던 마을이다. 이 마을에서 장남으로 나고 자라 부모님 봉양을 위해 타지로 나가지 않은 장남들의 모임이 있으니 이름하여 ‘장남회’다. 20대에 조직해 70대가 될 때까지도 우정을 이어나가는 이들은 조군학(70) 통장, 조태호(71), 임종우(70), 조재복(70) 씨다. 조군학 통장을 제외하고 각각 6남매, 8남매, 5남매의 맏이들이다. 어렵게 살았지만 어울려 지내는 재미도 있어 가장 즐거웠던 시절이 마무골에서의 젊은 시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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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남회' 멤버들. 왼쪽부터 조태호, 임종우, 조재복
 
‘장남회’의 총 멤버는 7명, 세상을 등진 친구도 하나, 이사를 간 친구도 있고 지금은 네 명의 친구들이 모였다. 이들은 푸세식 화장실에서 신문지도 아닌 볏짚으로 헌 새끼를 꼬아 볼일을 봤던 시절부터 마무골 토박이들이다. 살고 있는 집에서 옛집을 허물고 새로 집을 짓고… 조태호 씨의 경우는 36사단에서 군복무를 마쳤으니, 평생을 마무골 주위를 벗어나지 않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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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젊은 시절의 조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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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0년대 36사단 하사관 주택이 들어섰던 마무골 하사관주택

마무골 위로는 70년대 36사단 하사관사택이 있다. 여기서 열루재 고개를 넘어가면 36사단이었다. 일명 군인주택이라고 하는 이곳 입구에는 커다란 느티나무가 있었다. 이 주택을 가기 전 끝집 부근이 마고선녀가 내려왔다는 폭포가 있었던 곳으로 추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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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안동 도로
 
마당에는 떨어진 낙엽과 추위에 얼어버린 건조한 골목, 좁다란 도랑에서 흐르는 물소리가 정겨운 마무골로 바람이 제법 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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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까치밥

까치밥만 홀로 남은 겨울이 운안동에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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